최근 2026년에 다시 불거진 **안상호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한 역사적 인물의 과거가 현재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어, 저도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과연 **안상호**라는 인물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이유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꼼꼼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6년, 안상호 친일 논란이 다시 불거진 배경

2026년 8월, 배우 하영 씨가 한 방송에서 자신의 증조부가 '한양 최초의 양의원 개원 의사이자 고종 황제를 진료한 인물'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안상호** 선생이셨죠. 이 방송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안상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의혹이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소속사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8월 11일 추가 확인을 통해 1916년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안상호**의 이름이 올라있었음을 인정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과거를 넘어, 일제강점기 역사 인물에 대한 재평가와 그 후손들의 책임 문제까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소식을 접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발생 시점 |
주요 내용 |
| 2026년 8월 |
배우 하영, 증조부 안상호 언급 |
| 직후 |
안상호 친일 행적 의혹 온라인 제기 |
| 8월 11일 |
소속사, 대정친목회 평의원 활동 인정 |
| 이후 |
역사 재평가 및 후손 책임론 확산 |
의사이자 교육자 안상호, 그는 누구인가?

**안상호**(安商浩, 1872~1927)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했던 의사이자 교육자였습니다. 그는 대한제국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1902년 6월에는 일본 동경자혜의원의학교를 졸업하며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면허를 취득한 대단한 인물입니다.
귀국 후 **안상호**는 1904년 서울 종로에 한국 최초의 서양식 개인 병원인 안상호병원을 개원하며 초기 개업의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순종의 전의(典醫)와 고종의 이왕직 촉탁의를 지내기도 했죠. 1908년에는 일본인 의사 단체에 맞서 한국인 의사들로 구성된 의사연구회를 조직하고 부회장을 맡는 등, 초기 근대 의료 발전에 기여한 부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대정친목회 활동: 친일 단체 가입의 진실

**안상호**의 친일 행적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1916년 11월 29일 결성된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의 초대 평의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입니다. 대정친목회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조선의 상류층과 일본인 유력자들을 엮어 '내선융화'를 꾀하고,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실력 양성'이라는 명분으로 왜곡시키려 했던 어용 단체로 평가받습니다.
이 단체에는 이완용, 민영휘 같은 핵심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고문이나 회장 등으로 참여했습니다. **안상호**는 윤치호 등과 함께 21명의 평의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이는 그가 식민지 지배층의 친일 협력 구조 속에 깊이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많은 분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일신보 인터뷰: '내선일체' 선전의 중심에 서다

**안상호**는 1918년 12월 10일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로 인해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전연(全然)히 내지화(內地化)한 의사 안상호 씨의 가정'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을 선전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기사에서 **안상호**는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옷은 한 벌도 없다",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고 말하며 자신의 일본식 생활 방식을 자랑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인 아내와 자녀들이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하고 조선 사람과는 교류하지 않는다고 언급해, 그의 가정이 일본식 생활양식을 받아들인 모범 사례로 선전되었죠. 이러한 내용은 일제 식민 통치에 순응하고 동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메시지를 조선인들에게 전달하는 데 이용되었기에, 저도 읽으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완용 치료 기록: 매국노의 생명을 구한 의사
**안상호**는 1909년 12월 22일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었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992년 공개된 박영석 전 건국대 사학과 교수의 논문 '이완용 연구'에는 이완용이 병원으로 옮겨진 뒤 한성병원과 대한의원 의료진, 전의 박종환을 비롯해 **안상호** 등 당시 의사들의 치료로 "목숨을 구하게 됐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1927년 발간된 이완용 추모록 『일당기사(一堂紀事)』에는 **안상호**가 이완용이 완쾌할 때까지 날마다 찾아가 진료했다는 구체적인 기록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재명 의사는 거사 후 1910년 9월 30일 순국했지만, 이완용은 **안상호** 등의 치료 덕분에 생존하여 8개월 뒤인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의 전권위원으로 조약을 체결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 사실은 많은 분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종 독살설 연루 의혹: 역사적 미스터리
1919년 1월 21일 고종 황제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당시 이왕직 촉탁의였던 **안상호**가 고종 독살설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구전된 소문에 따르면, 윤덕영과 민병석 등 거물 친일파들이 조선총독부와 모의하여 **안상호**에게 고종의 식혜에 비소를 타 독살하게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 역시 자신의 수기에서 "이태왕(고종)은 의사 **안상호**에게 독살되었다"고 저술한 바 있습니다. 이 독살설은 당시 식민지 조선 민중의 분노를 일으켜 3.1 운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뚜렷한 증거가 없어 공식적인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미등재, 논란의 쟁점은?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이름이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가 친일 행적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며, 『친일인명사전』은 특정 기준과 증거의 명확성에 따라 등재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부분을 보면서 왜 등재되지 않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안상호**가 대정친목회에 참여하고 일제의 동화정책 선전에 그의 가정이 이용된 점은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단체 가입 사실만으로 개인을 곧바로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친일인명사전』 편찬자 측은 사전에 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친일이 아닌 것은 아니며,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둘러싼 평가는 아직도 복잡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친일 행적 재조명,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
2026년 **안상호**의 친일 행적 논란이 재조명되면서, 그의 후손인 배우 하영 씨에게도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하영 씨 측은 초기 부인 입장에서 하루 만에 대정친목회 평의원 활동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배우겠다고 밝혔습니다. 저도 이러한 빠른 인정과 사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논란은 단순히 한 개인의 역사적 평가를 넘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 환수 가능성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2004년 2월 8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제 협력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은 환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만약 **안상호**가 법률상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될 경우 실제 환수 절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역사적 진실을 마주하는 우리
오늘 우리는 2026년 다시 불거진 **안상호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한 인물의 삶이 여러 층위로 해석될 수 있지만, 분명한 역사적 사실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러한 논란을 통해 과거를 바르게 이해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켜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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