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한국 가요계에 깊은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1970년대 독보적인 허스키 보이스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가수 옥희가 신장암 투병 끝에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몰라요', '이웃사촌' 등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명곡들을 남긴 그녀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되돌아봅니다.
가요계 큰 별 지다: 가수 옥희 영원한 이별

2026년 6월 20일 오후, 경기도 수원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수 옥희가 가족들의 품에서 영면에 들었습니다. 신장암과의 긴 싸움 끝에 맞이한 이별이었죠. 본명 김광숙인 그녀는 1970년대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여성 가수였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허스키하면서도 깊은 감성이 담긴 음색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었거든요. '나는 몰라요'로 시작된 그녀의 히트곡 행진은 '이웃사촌'에 이르기까지 계속됐고, 수많은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노래들을 선물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음악을 향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옥희. 투병 중에도 무대에 섰고, 새로운 곡을 발표하며 가수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가 떠난 자리는 너무나 크고,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1970년대 가요계를 수놓은 그녀의 발자취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난 옥희는 배화여중과 배화여고를 졸업한 후 1968년 5인조 걸그룹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선구적인 행보였죠. 그 시절에 걸그룹이라니 말입니다.
서울시스터즈로 활동하며 그녀는 홍콩, 중동,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지를 누볐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원조 K팝 스타'인 셈이죠. 한국 대중음악이 세계로 나가는 길을 처음 개척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해외 공연을 다니며 쌓은 경험은 이후 그녀의 음악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귀국 후 1974년, 작곡가 김희갑이 만든 '나는 몰라요'로 솔로 가수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이 곡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그 해 MBC 10대 가수상까지 수상하며 옥희는 단숨에 톱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이룬 성과치고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죠.
'나는 몰라요'부터 '이웃사촌'까지 히트곡 열전
| 연도 |
대표곡 |
비고 |
| 1974년 |
나는 몰라요 |
솔로 데뷔곡, MBC 10대 가수상 수상 |
| 1975년 |
눈으로만 말해요 |
허스키 보이스의 진가 발휘 |
| 1976년 |
어디에 있을 것 같아 |
연속 히트 |
| 1977년 |
이웃사촌 |
최고의 히트곡 |
| 1977년 |
두 손을 잡아요 |
감성 발라드 |
| 1981년 |
옥희의 꿈 |
음악적 성숙기 |
'

나는 몰라요'의 성공 이후 옥희는 승승장구했습니다. 1975년 '눈으로만 말해요', 1976년 '어디에 있을 것 같아'까지 연이어 히트를 치며 1970년대 중반 가요계를 평정했죠. 그녀의 노래는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흥얼거렸습니다.
1977년에 발표한 '이웃사촌'은 아마 그녀의 노래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일 겁니다. 애절한 가사에 실린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저절로 촉촉하게 만들었거든요. 같은 해 발표한 '두 손을 잡아요'도 큰 인기를 끌었고, 1981년 '옥희의 꿈'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습니다.
복싱 영웅 홍수환과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

가수 옥희의 인생에서 홍수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전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었던 홍수환과의 만남은 1970년대 후반 큰 화제였죠. 스포츠계 최고 스타와 가요계 최고 스타의 만남이었으니까요.
1978년 두 사람 사이에 딸 홍윤정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별하게 되었고,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했죠. 그런데 운명이란 게 참 묘합니다. 16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1995년, 두 사람은 다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재결합 이후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2000년에는 함께 '옥희&홍수환 찬양 앨범'을 발표하며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사랑이 더 단단해진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로 기억됩니다.
신장암 투병과 마지막까지 놓지 않은 열정
2025년 2월, 옥희는 신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겠지만, 그녀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았습니다. 2024년 발표한 '고마운 사랑'은 그녀의 음악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곡이었죠.
음악 동인 예우회의 '전설을 노래하다' 음반에 실린 '인생 열차'가 그녀가 남긴 마지막 노래가 되었습니다. 제목부터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인생이라는 열차를 타고 여기까지 온 그녀의 여정이 담긴 것 같아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특히 2026년 3월 KBS 1TV '가요무대'에 출연해 '정열의 꽃'을 열창한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선 그녀의 모습에서 진정한 프로 가수의 면모를 볼 수 있었거든요. 마지막 순간까지 노래하고 싶었던 그녀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2026년 6월 20일, 수원에서 맞은 영면
2026년 6월 20일 오후, 경기도 수원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수 옥희는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3세였습니다. 남편 홍수환과 딸 홍윤정, 아들 홍장환 등 가족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절친했던 동료 가수 장미화는 옥희의 딸로부터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별세 소식을 들었다고 하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갑니다. 장미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료 가수들과 팬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가수옥희별세 소식은 가요계 전체에 큰 슬픔을 안겼습니다. SNS에는 추모 글들이 쏟아졌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들으며 고인을 기렸죠. 1970년대를 함께 살았던 세대에게는 청춘의 한 페이지가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이었을 겁니다.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엄수된 마지막 가는 길

2026년 6월 24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고(故) 옥희의 영결식이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엄숙하게 거행되었습니다. 평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고인의 뜻에 따라 예배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대한가수협회 박상철 회장을 비롯해 유현상, 강진, 임희숙, 장미화, 강혜연 등 수많은 동료 가수들이 참석했습니다. 연예계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죠. 장례식장은 그녀를 추모하는 이들로 가득 찼고, 곳곳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남편 홍수환의 고별사는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훌륭한 가수랑 살았나 싶다"는 그의 말에는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고인의 유해는 함백산 추모공원에 안장되어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평생 사랑했던 노래를 부르며 편안히 쉬고 있을 것입니다.
그녀가 남긴 음악 유산과 영원한 기억
1968년 데뷔 이후 약 58년간 한국 대중음악계와 함께한 가수 옥희. 그녀가 걸어온 길은 한국 가요사의 중요한 한 장을 차지합니다. 서울시스터즈로 시작해 세계 무대를 누빈 '원조 K팝 스타'로서의 행보는 지금의 K팝 열풍을 예견한 것 같습니다.
그녀의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는 1970년대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성 가수들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주류였는데, 옥희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거든요. '나는 몰라요', '이웃사촌', '눈으로만 말해요' 같은 히트곡들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비록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노래들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입니다. 라디오에서, 음악 방송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입에서 그녀의 노래는 계속 불릴 테니까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무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삶은 후배 가수들에게도 귀감이 될 것입니다.
한 시대를 빛낸 목소리,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가수옥희별세는 단순히 한 가수의 죽음이 아니라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1970년대 가요계를 대표했던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추억 속에서만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음악과 열정적인 삶의 이야기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