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신촌을 뜨겁게 달궜던 음악 듀오 '전람회'. 이름에 '동'자가 들어간 두 멤버로 구성되어 '동동브라더스'라 불리던 서동욱과 김동률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최근 서동욱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다시 한번 조명받는 전람회의 전설 같은 이야기, 함께 살펴볼까요?
전람회: 1990년대 신촌의 전설
1990년대 초반, 신촌 일대에서는 '동동브라더스'라 불리는 두 명의 청년이 큰 화제였어요. 바로 전람회의 서동욱과 김동률이죠. 두 사람 모두 이름에 '동'자가 들어가서 붙여진 이 애칭은 나중에 그들의 상징이 되었답니다.
전람회는 당시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어요. 대부분의 가수들이 작곡가나 프로듀서의 곡을 받아 부르던 시절, 자신들의 음악을 직접 만들고 연주하는 창작 그룹으로서 큰 주목을 받았거든요.
특히 1993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꿈속에서'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전람회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엄청난 팬층을 확보했어요. 그들의 감성적인 가사와 멜로디는 당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죠.
서동욱과 김동률의 만남

전람회 서동욱과 김동률은 휘문고등학교 동창이었어요. 이후 두 사람 모두 연세대학교에 진학하며 음악적 우정을 이어갔죠. 대학 시절 두 사람은 캠퍼스 내 밴드 활동을 하며 실력을 쌓았고, 1993년에는 함께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하기로 결심했어요.
이들이 부른 '꿈속에서'는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죠. 이 곡은 서정적인 가사와 담백한 멜로디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두 멤버의 음악적 개성은 확연히 달랐지만, 그 조화가 오히려 전람회만의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냈어요. 서동욱의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목소리와 김동률의 안정적인 연주 실력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전람회의 정체성을 확립했답니다.
| 멤버 |
담당 역할 |
음악적 특징 |
| 서동욱 |
보컬, 작사, 작곡 |
서정적인 목소리, 감성적인 가사 |
| 김동률 |
키보드, 작곡, 편곡 |
탄탄한 연주 실력, 세련된 편곡 |
전람회의 정식 데뷔와 첫 앨범

1994년, 전람회는 첫 정규 앨범
을 발매했어요. 이 앨범에는 '기억의 습작'을 비롯해 대학가요제에서 선보였던 '꿈속에서' 등 감성적인 곡들이 수록되었죠. 특히 '기억의 습작'은 발매 직후부터 큰 인기를 끌며 전람회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았어요.
이 앨범은 당시 음악계의 혁신적 인물이었던 신해철이 프로듀싱에 참여해 더욱 화제가 되었어요. 신해철의 음악적 안목과 전람회의 감성이 만나 높은 완성도의 앨범이 탄생했죠. 첫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했답니다.
앨범 발매 이후 전람회는 전국 투어와 다양한 공연 활동을 통해 팬들과 만났어요. 특히 신촌과 홍대 일대에서 열린 공연은 항상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죠. 이 시기에 전람회는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룹으로 평가받았어요.
전람회의 활동기와 주요 히트곡들
1996년, 전람회는 두 번째 정규앨범 를 발매했어요. 이 앨범에는 '취중진담', '이방인', '새', '여행' 등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명곡들이 담겼죠. 특히 '취중진담'은 술에 취해 진심을 털어놓는 가사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어요.
전람회의 두 번째 앨범 역시 신해철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자랑했어요. 신해철의 지속적인 제작 참여는 전람회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죠. 전람회는 이 앨범으로 더 넓은 팬층을 확보하며 인기를 끌었어요.
라이브 공연과 팬미팅의 규모도 점점 커져갔어요. 초기에는 작은 클럽에서 공연하던 전람회가 이제는 대형 공연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성장했죠. 음악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도 크게 높아졌어요. 전람회는 단순한 대학가요제 출신 그룹이 아닌,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답니다.
세 번째 앨범 '졸업'과 그룹의 의도
1997년, 전람회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앨범을 발매했어요. 이 앨범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졸업'이었죠. 앨범 타이틀에서 이미 그룹의 향후 방향성을 암시하고 있었던 셈이에요.
이 앨범은 추억과 회상이라는 컨셉으로 구성되었어요. 앨범 재킷에는 대학가요제 수상 당시의 모습이 포함되었고, 수록곡들도 지나간 시간과 추억에 대한 감성적인 내용이 많았죠. '졸업', '다짐' 등의 곡은 전람회의 마지막 히트곡으로 기록되었어요.
사실 이 앨범은 해체를 앞두고 두 사람의 우정과 음악 여정을 기록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어요. 앨범 전체에 흐르는 감성은 마치 청춘의 한 장을 마무리하는 듯한 아련함이 느껴졌죠. 팬들은 이 앨범을 통해 전람회의 마지막 음악적 메시지를 받아들였어요.
전람회 해체의 배경과 결정 이유
전람회가 해체를 결정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무엇보다 두 멤버 모두 너무 어린 나이에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죠. 대학생 신분으로 가수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학업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결국 두 사람은 "학교로 돌아가 공부에 전념하고 싶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며 그룹 활동을 마무리했어요. 또한 서로 다른 음악관과 미래에 대한 방향성 차이도 해체의 이유 중 하나였죠. 서동욱은 음악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김동률은 음악에 더 집중하고 싶어했어요.
1997년, 전람회는 약 4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공식 해체를 선언했어요. 짧은 활동 기간이었지만 전람회가 남긴 음악적 유산은 오랫동안 팬들의 마음속에 남았답니다. 두 멤버의 결별은 아쉬웠지만, 각자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팬들의 마음도 컸어요.
해체 후 서동욱의 제2의 인생
전람회 해체 후 서동욱은 음악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어요. 그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수료하고 금융계로 진출했죠. 맥킨지앤컴퍼니, 두산그룹 등 유수의 기업에서 활약하며 비즈니스맨으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어요.
특히 모건스탠리 프라이빗 에쿼티에서는 부대표직을 역임하며 금융 전문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어요. 음악인에서 비즈니스맨으로의 전환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서동욱은 이 분야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답니다.
음악 활동을 접었지만, 서동욱은 전람회 시절의 파트너였던 김동률과 우정을 계속 유지했어요. 2008년에는 김동률의 콘서트에 깜짝 방문해 응원하기도 했죠. 이런 모습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고, 두 사람의 변함없는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어요.
전람회의 유산과 문화적 의미
전람회는 1990년대 신세대 음악의 대표 그룹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요.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로 사랑받은 그들은 후대 뮤지션들에게도 큰 영향과 영감을 주었죠.
'기억의 습작', '취중진담' 등 전람회의 명곡들은 세월이 흘러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어요. 지금도 각종 음악 프로그램이나 노래방에서 불리는 이 노래들은 전람회의 음악적 가치를 증명하고 있죠.
안타깝게도 2024년 12월 18일, 서동욱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전람회의 재결합을 기다리던 팬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어요. 많은 팬들이 서동욱의 별세 소식에 깊은 슬픔을 표하며 전람회의 음악을 다시 찾아 듣기 시작했죠.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전람회 서동욱을 추모하는 글들이 이어졌어요.
영원히 기억될 동동브라더스의 음악
신촌의 전설 '전람회'와 서동욱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어요. 비록 짧은 활동 기간이었지만, 그들이 남긴 음악적 족적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깊이 새겨져 있어요. 서동욱은 음악인에서 금융인으로 성공적인 전환을 이루었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는 여전히 '전람회의 서동욱'으로 기억될 거예요.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전람회의 음악은 더욱 값진 추억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전람회의 음악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계속 울려 퍼질 것입니다. 신촌의 동동브라더스, 전람회와 서동욱의 전설은 이렇게 우리 곁에 남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