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손예진 선글라스’가 문제라고?…안경 속 K산업 민낯
텅 빈 건물. 자전거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는 문. 빠른 성장률을 기록한 K-아이웨어 브랜드, 블루엘리펀트의 본사 주소지로 기재된 성수동 건물입니다.블루엘리펀트가 소유하고 있는 성수동 건물의 토지에는,대전지방법원이 검찰의 신청을 받아들여 ‘재산을 동결하라’는 추징보전 명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그 규모만22억 6000만 원입니다.블루엘리펀트의 본사 주소지로 기재된 성수동 건물블루엘리펀트가 소유한용산구 토지에도 추징보전이 걸려 있는데, 금액은55억 6000만 원입니다. 두 곳을 합치면총 78억 원 규모의 블루엘리펀트 재산이 동결된 셈입니다.추징보전은 국가가 ‘범죄수익과 연결될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판결 전이라도 해당 재산 처분을 막기 위해 취하는 조치입니다. 즉, 수사기관이 블루엘리펀트와 관련된 사안을 단순 의혹 이상의 단계로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젠틀몬스터, 블루엘리펀트 상대 '고소'…디자인 출원 안 한 게 문제 키웠다왼쪽은 젠틀몬스터 제품, 오른쪽은 블루엘리펀트 제품.블루엘리펀트에 대한 추징보전은 아이아이컴바인드(젠틀몬스터)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블루엘리펀트를 고소한 데에서 비롯됐습니다. 아이아이컴바인드는 블루엘리펀트가 자사 디자인을 모방했다고 주장했고, 현재 관련 수사가 이를 토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관련기사젠틀몬스터 “제니 안경까지 베꼈다”…K아이웨어 ‘표절 의혹’ 수사“99.8% 일치·선행 디자인 없음”…‘표절 분쟁’ 휩싸인 K아이웨어그런데 업계에 따르면, 정작 젠틀몬스터도 해당 제품군에 대해 디자인 출원을 하지 않아 '권리 공백'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공백 속에서 유사한 디자인이 시장에 등장했고, 결국 양측 간 분쟁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입니다.■7개월 걸리는 디자인 심사…트렌드 변화 속도 못 따라가다만 이는 아이웨어 업계 전반은 물론 디자인이 중심인 산업군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구조적 관행이기도 합니다.유행 주기가 극단적으로 빠르다 보니, 디자인 출원을 통해 법적 보호를 준비하는 속도 자체가 실제 제품 개발·출시 속도와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지식재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디자인 출원 심사는 ‘착수’까지 평균 약 7개월이 걸립니다.물론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바로 ‘일부 심사’ 제도입니다. 일부 심사는 약 21일(0.7개월)이면 가능하며, 장기간 지연될 때 최소 요건만 먼저 심사해 주는 방식입니다.다만 이 과정에서 무효 사유가 발생할 위험이 있고, 그 책임은 출원인이 부담해야 하는 구조입니다.■안경테·선글라스, 예외 적용도 못 받는다…이유는?그런데 ‘일부 심사’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아닙니다. 심사받을 수 있는 7개 품목군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지식재산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부 심사' 대상을 7개 항목을 두고 있는데, △제1류(식품) △제2류(의류 및 패션잡화용품) △제3류(가방 등 신변품) △제5류(섬유제품·인조·천연 시트직물류) △제9류(포장용기) △제11류(보석·장신구) △제19류(문방구·사무용품·미술재료·교재)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하지만안경테와 선글라스는, 이 항목이 아닌 '제16류(광학제품)'로 분류돼 있어 '일부 심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7개월 이상 걸리는 일반 심사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계절이 두 번 바뀌는 시간입니다.차선으로 ‘우선심사’ 제도를 이용할 수는 있습니다. 청구가 접수되면 다른 출원보다 먼저 심사하는 방식이지만, '일부 심사'보다 처리 기간도 더 길고 비용도 더 많이 듭니다.■디자인 출원마다 붙는 비용…비용 부담도 '고민'중소업체로선 비용 부담 역시 디자인 출원을 하지 않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조사됩니다.일반 심사 출원료는 디자인 1건당 전자출원 9만 4000원(서면 10만 4000원)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우선심사'를 신청하면 7만 원이 더 붙습니다.회사가 직접 출원하지 않고 변리사를 통해 진행하면 비용은 더 늘어납니다. 또 디자인마다 별도의 출원 비용이 붙는 구조이기 때문에, 출원해야 할 디자인이 많을수록 회사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출원 후 유지비도 고민 요소입니다. 출원 후 기간별로 △1~3년 2만 5000원 △4~6년 3만 5000원 △7~9년 7만 원 △10~12년 14만 원 △13~20년 21만 원을 매년 유지비로 납부해야합니다.■성장 가파른 블루엘리펀트 vs. 대표 K아이웨어 젠틀몬스터...그 끝은블루엘리펀트는 각종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KBS에 “아이아이컴바인드가 권리를 주장하는 제품들은 부정경쟁방지법 등 관련 법령으로 보호되기 어려운 제품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현재 관계 기관들이 사실관계와 법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현행 부정경쟁방지법은 디자인 출원이 되지 않았더라도, 완제품 출시 3년 안에 무단 표절이 이뤄진 경우 처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출시 '3년'이 지나면 그 디자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 즉 '표절'해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블루엘리펀트는 취재진이 ‘해당 제품의 디자인 차용 여부를 전면 부인하는 것인지’ 등을 거듭 질의했으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블루엘리펀트 매출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은 2022년 약 10억 원에서 2023년 약 58억 원, 2024년에는 약 300억 원으로 크게 뛰었습니다. 취재진이 블루엘리펀트의 매장을 찾았을 때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문이 열리기 전부터 줄을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젠틀몬스터에 이어 블루엘리펀트도 점점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며 'K 아이웨어' 대표 주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서 이어지는 업체 간 싸움, 산업 경쟁력 자체를 흔들 수 있습니다.한 업계 관계자는 “제도적 공백을 틈타 디자인 모방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디자인 개발에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데, 이를 생략하고 기존 디자인을 활용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 늘면 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사진/그래픽 이영현)■ 제보하기▷ 전화 : 02-781-1234, 4444▷ 이메일 : kbs1234@kbs.co.kr▷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네이버,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